땅속 깊이 묻어놓은 태양
우울증 극복 수기
‘극복’이라는 멋진 날갯짓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나의 어깨에 새롭게 돋아난 극복의 날갯짓을 활짝 펴보인다.
“헉,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죽도록 달렸다. 맨발에 자갈이 박히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오직 엄마만 피하면 되니까. 혼비백산되어 뛰고 있던 여덟 살 아이를 지나가던 할머니가 붙잡아 주었다. 하지만 고마운 일은 아니었다. 할머니 뒤로 굶주린 사자처럼 이빨을 드러낸 엄마가 있었다.
“퍽” 엄마의 둔탁한 주먹에 이내 두 줄기 코피가 흘러내렸다. 저녁까지 언니와 놀며 숙제를 하지 않은 탓이다. 퇴근 후 돌아온 엄마는 숙제를 하지 않은 두 딸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 정전으로 깜깜해진 방안에선 엄마의 구타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덜덜 떨며 차례를 기다리던 나는 언니의 비명에 그만 집을 뛰쳐나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 자매에게 엄마는 정말이지 너무나 무서운 존재였다. 학대에 가까운 엄마의 체벌은 어린 나이의 소녀들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형벌이었다. 공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냥불을 눈앞에 들이밀며 태워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엄마 앞에서 우리는 그저 숨죽이며 이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공부해서 엄마같이 살지 말란 말야.”
오열하는 엄마의 눈물에 성냥불은 꺼졌지만, 나는 오줌보에 구멍이 난 듯 오줌을 질질 흘리며 덜덜 떨고만 있었다.
상황은 점점 더 끔찍해졌다. 언니가 점점 엄마를 닮아갔던 것이다. 엄마가 없을 땐 그녀가 엄마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나를 구타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여기저기 상처 나고 멍든 몸으로 지냈다. 몸이 다칠 때마다 영혼에도 상처가 생겨났다. 몸도 마음도 온통 상처 투성이었다.
"후~우!" 언젠가부터 잦은 한숨소리에 내 삶이 꺼져 들어갔다. 불면증으로 밤새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 해가 뜰 때 쯤에서야 비로서 잠이 들었고, 위가 고장 난 듯 늘 입안에 쓴 위액이 고여 혓바닥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엉망진창으로 무거워진 몸은 바닥에 눌어붙은 듯했다. 약을 먹어도 좀체 낫지 않자 어디 한 곳이 단단히 고장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서 준 위장약을 삼키는데, 스쳐가듯 의사선생님이 한 말이 떠올랐다.
“고 3이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 봅니다. 신경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아보세요.”
쓴웃음으로 의사의 조언을 외면했다. 나름대로 밝게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니.
그렇게 어렵게 10대를 넘긴 탓에 나의 20살은 ‘생기발랄’과 거리가 멀었다. 그 모습이 나이에 비해 조숙해 보였던지 친구들은 내게 이런저런 상담을 자주 해왔다. 그러나 또래 친구들의 고민은 모두 내게 먼 나라 이야기처럼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내 눈에 그들은 그저 부족할 것 없이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상처 없이 자란 행운아들 같았다.
대학 시절 나는 무엇이든 눈치껏 열심히 잘해보려 노력하며 지냈지만, 항상 어딘가 부족했다. 행복한 듯 웃으며 지내도 마음속에서는 허기가 졌다. 혼자된 느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것인지 뼛속 깊이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나에겐 가족과 친구들이 없었다. 있어도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 살면서 단 한번도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행복이 어떤 건지 의심만 솟구쳤다. 그래도 작은 바람이 있다면 밤에 깊은 잠을 자보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모든 것에 신경질적으로 되어갔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안 들고 집중이 안 되었다. 누군가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면 악마의 마음을 품으며 공격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선 입술이 떨려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상황이 지난 다음에야 혼자서만 발을 구르며 화를 품을 뿐이었다. 사람들의 모순되고 상처주는 행동을 일일이 기억하며 독버섯처럼 독기를 품었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화를 내지 못하고 무조건 피하기만 하는 내 자신이었다. 간혹, 상처 준 사람을 괴롭히는 상상을 하면 왠지 모르는 짜릿함까지 느끼곤 했다.
점점 사람들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가족조차도 마음을 열 수가 없는데 그 누구에게 이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이런 상태를 들키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들키는 날이면 위로를 가장한 위선으로 다가올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들 모두 한 꺼풀 벗겨내면 이기적인 모습을 드러낼까봐 두려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 년이 지났어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아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나른하다 못해 종이 한 장 집을 힘도 없어 누워있기만 했다. 주변에선 소금에 절여진 상추잎 같은 나를 보고 게을러졌다고만 할 뿐이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숨쉬고 있는 시간 시간을 저주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살을 마음에 새기며 내일의 태양이 땅속 깊이 묻히길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날, 남자친구가 손을 잡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너를 봐. 혼자서 해결할 수 없잖아. 병원 가서 상담 받고 함께 노력해보자.”
병원을 가기 전 나는 우울증에 관련된 책을 사보기로 결정했다. 책 속에 쓰여 있는 우울증 증상들은 마치 나를 보고 있는 듯 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책 속에서 약물치료, 상담치료의 문구가 불쑥 튀어나왔다. 한참을 그 문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처음 병원을 찾은 날, 상담을 기다리던 몇몇 사람들이 왠지 나를 미치광이로 보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다. 모자라도 쓰고 올 걸. 후회하고 있을 때 쯤 내 이름이 불려졌다. 단단히 굳은 동태 같은 나를 따뜻하게 맞이하는 의사선생님을 보자 긴장이 눈 녹듯 풀어졌다.
“제 증상은… 그러니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토해냈다. 긴 시간을 얘기한 것 같은데 의사선생님은 끝까지 나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단시간에 치료되는 병이 아니에요. 꾸준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받으시면 분명히 좋아집니다.”
“한두 달 정도 치료를 받으면 될까요?”
철없는 내 말에 의사선생님은 웃었다.
“한두 달 정도 치료하면 기분이 개선될 수 있지만 1년 정도 치료해야 완전히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치료되는 병입니다.”
약을 먹을 때 마다 ‘제발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먹었다. 그 간절한 기도가 통했는지 나는 조금씩 변했다. 잡다한 생각으로 늘 복잡했던 나의 뇌가 차곡차곡 정리된 듯 편안해지고, 늘 죽은 영혼에 시달리듯 으스스한 밤에도 곤히 잘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잠을 충분히 자게 되니 일어날 때 기분도 가뿐해졌다. 낯설지만 반갑기 그지없는 변화였다.
그러나 이런 치료가 언제까지 지속돼야 하는지 불안했다. 나에게 또 그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기기 시작했다. 1년 동안 꾸준하게 치료가 이어져야 한다는데, 나에게 그만한 인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불안해하는 나에게 의사선생님은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통해서 변화되는 자신을 경험하고, 그 변하는 경험들이 자신의 인생이 되어간답니다. 좋은 경험이 분명 자신을 변화시킬 거예요.”
‘치료’라는 새로운 ‘경험’은 분명 나에게 중요한 씨앗이 되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나의 감정을 부모님께 조곤조곤 얘기한 것이었다. 부모님들로부터 내 증상을 이해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약을 중단해도 유지될 수 있는 생활의 변화가 그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산책같이 작은 운동부터 시작했다. 특히 남자친구와 함께 한 봉사활동은 나의 경험 중 최고의 치료제였다. 치료한 지 1년이 되어 갈쯤 나는 새로운 뇌를 기증받은 듯 새롭게 변해있었다. 예전에 느꼈던 불행한 감정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입술을 바르르 떨며 악을 품었던 예전과는 달리 논리정연하게 나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상담 치료를 통해 무엇보다 우리 가족이 행복해진 것 같았다.
몸서리칠 정도로 나의 과거는 어둡고 검은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 어둠은 현재 아니 미래까지 덮칠 수 있을 정도로 그 파괴력은 대단했었다. 어둠은 빛으로만 밝힐 수 있다. 내가 치료를 받았던 그 순간은 땅속 깊이 묻어 놓은 태양을 끄집어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우울증을 부끄럽게 여기며 불행한 나날을 보냈던 그 시절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울증 치료를 통해 나는 현재 주어진 이 행복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울증은 감추고 숨겨야 할 부끄러운 치부가 아니다. 몸이 아프듯이 마음이 아픈 병일 뿐이다. 몸 어딘가가 아프면 약을 먹고 적절한 치료를 받듯이, 떳떳하게 위로와 애정을 받아야만 빨리 일어날 수 있다. 모든 이들이 나처럼 더 이상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지 않고 적절한 치료로 삶의 행복을 찾았으면 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땅속 깊이 묻어놓은 태양 - 우울증 극복 수기 (정신이 건강해야 삶이 행복합니다, HIDO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