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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이야기] 정신과에 가는 것이 너무 겁이 나요

admin2019.12.11 09:24조회 수 181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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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에 가는 것이 너무 겁이 나요

-‘82년생 김지영’에 나타난 우리 사회의 정신과적 문턱 그리고 인간 고통의 정상성에 대해-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주인공 김지영(정유미 분, 이하 지영)은 우울 증상 그리고 해리 증상을 보이는 30대 주부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좀처럼 빨리 병원을 찾지 않았다. 남편 역할을 맡은 대현(공유 분)이 여러 번 병원에 갈 것을 설득하는 장면도 나오고, 지영을 병원에 데려가기 전에 보호자로서 미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면담을 하기도 하지만 정작 지영이 제 발로 걸어 정신과 병원을 찾는 장면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늦게 나왔다.

 

‘주인공은 대체 언제 병원에 가는 거야?’, ‘제발 좀 가지......’ 라며 초조한 마음을 여러 차례 느꼈고, 게다가 지영이 한참만에 증상에 대한 인식(insight)이 생기고 병원의 문을 정작 두드리고 나서도 검사비가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다시 돌아오는 장면에서 안타까운 마음을 다시금 느꼈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정신과를 찾기를 거부하고, 두려워하고, 싫어한다. 그러나 환자로서 병원에 가는 것은 여러 이유로 (필자 역시도) 무섭기에, 이해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우울장애는 정신건강의학과 장면에서 가장 흔한 심리 장애로, ‘심리적 독감’이라고 비유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감기에 비유되는 우울 장애에 대해 혹시나 오해가 생기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개인이 감내하기에는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 사건으로 우울 증상을 경험하는 개인들 그리고 이전에 우울했던 경험(episode)으로 고생을 하고, 재발을 한 개인들의 경우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증상을 회복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단순히 감기로만은 바라볼 수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마음이 아프다고 도움을 요청해 올 때,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는 심리학자로서 필자는 일단 병원 혹은 공인된 기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강력히 권유해 왔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조금 울적해지거나 불안을 느끼는 즉, ‘마음이 아프다’는 경험은 인간으로서 얼마든 겪을 수 있는 정상적인 현상(normal phenomenon)이라 볼 수 있다. 사실상 문명과 사회가 발전할수록 안전을 해치는 위험 요인이 많아짐에 따라 개인이 생존을 위해 일종의 경보 신호(alarm)를 마음에서 많이 만들어 내어, 우리가 불안하거나 우울한 마음이 많이 생기도록 진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현대인들은 과거 선조들이 경험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마음의 아픔을 많이 느끼게 되는데, 이를 유별나고 기이한 현상으로 보는 것 보다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실제로 여러 요인으로 그러한 부정적인 마음이 너무 자주 들어 과도하게 없애려고 하거나, 피하려 할 때 오히려 개인들은 에너지를 많이 쓰면서 부대끼고, 소진되는 마음 상태를 겪으며 더욱 곤혹스럽고, 힘들어하게 된다.

 

즉, 마음의 통증(pain)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스스로와 동일시할 때, 고통(suffering)이 생기게 된다(예를 들어, 울적하거나 겁이 나거나 무기력한 감정등을 피하면서 오히려 자기 비난적 생각인 ‘나는 못난이야’, ‘나는 보잘 것 없어’라는 파국적인 결론에 이르게 됨). 또 과도한 고통으로 일상 생활의 적응이 어려워질 때(이 때는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상태의 우울이 됨), 가급적 빨리 병원에 방문하여 객관적인 평가와 치료를 받으면 지금보다 좋아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열리게 된다.

예를 들어 심리 치료의 경우 힘든 마음의 상태를 제 3자인 치료자가 객관화해 주는 작업을 통해 결국에는 개인이 자신의 고통과 건강한 거리를 두게 되며(distancing),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강점(자원)들을 발견하며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기도 하며, 회복의 실마리가 열리기 때문이다. 즉, 고통에 휩싸일 때 정신과적 치료로 도움을 받은 개인들은 마치 먹구름이 끼여 흐려졌던 시야가 다시 밝아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우울장애’, ‘해리장애’, ‘불안장애’ 등 이름이 붙이는 것 때문에라도 사람들은 병원에 가는 것을 무시무시하게 생각한다. 진단명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내용에 얽히고 끌려간다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이 꼬리표(진단명)는 사실상 치료진들의 의사소통이나 치료 계획 수립, 연구 등의 실용적 목적을 위한 분류로서 만들어진, 일종의 이름(label)에 지나지 않는다.

<82년생 김지영>을 보기 전에도 사실 우리 나라에서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문턱이 아직 많이 높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던 계기 중 하나는 주변 어르신들과의 대화를 통해서였다. 정신건강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많은 어르신들이 흔히 하시는 말씀 중의 대표적인 하나는 ‘마음의 병은 의지만으로도 얼마든 고칠 수 있다. 마음을 굳게 먹으면 극복된다.’ 는 식의 내용이다. 추측컨대 빈곤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에 대한 공포와 좌절을 겪은 윗 세대 어른들이 제대로 된 정신과적 서비스를 경험하지 못한 채, 힘든 시간을 버티어 왔기 때문에 ‘의지를 갖는다’는 것이 유일한 자가 치료의 한 방법으로 활용되어 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음의 병이 의지로만 고칠 수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가 굳이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울 장애의 진단 기준 중의 일부는 ‘일상 활동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이 상실되는 것’, ‘피로감과 활력 상실’ 인데, 결국 의욕, 의지, 동기 수준이 낮아지는 것은 현재 개인의 우울 증상에 대한 기술 즉, 결과에 해당되는 설명이다. 우울한 개인에게 ‘너는 의지가 없구나.’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 우울증상이 있구나.’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그리하여 우울한 개인에게 우울하다는 현상을 다시 언급해 주는 것은 동어 반복일 뿐, 치료에 직접적 도움이 되기는 어려운 말이라 생각된다.

 

또한 우울한 개인은 그러한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에, ‘난 역시 의지가 없구나’ 하며 자신을 다시금 비난하고, 학대하기 시작한다. 의지를 갖고 극복한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자신을 충분히 이끌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자아 강도나 탄력성을 지니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일 것이지만...... 먹고, 말하고, 생각할 기운이 없고 마음이 너무 지친 상황에서 ‘내 의지로 이 상태를 혼자 극복해 가자’라는 당위적인 생각이 혹시 자신을 더더욱 지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 나오는 지영의 시어머니가 ‘너도 참 별나다.’라며, 지영의 증상에 대해 지적하듯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견 즉, ‘인간의 마음의 병은 유별난 사람이 걸리는 것이고, 지극히 비정상적인 현상이다’라고 하는 흔한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과는 질적으로 다르며, 마음의 병에는 (다른 배경은 무시하고) 예외 없이 개인 내적 책임이나 단일한 이유 - 의지 박약과 같은- 가 따른다는 식의 완고하고 이분법적인 시야는, 다양한 원인이나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향한 관대한 시선을 갖기 어렵게 하며 우리 사회의 정신과 문턱을 높이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마음이 아픈 개인이 병원을 찾는 것은 참 쉽지 않다. 병원은 여러 이유로 개인에게 혐오적인 기억이나 감정, 생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어릴 때부터 자동적으로 연합되어 왔다. 그나마 정신과 병원에서는 지독한 소독약 냄새나 피, 수술 도구 등의 무시무시한 물리적인 자극은 찾아 볼 수 없지만, ‘마음의 병을 너무도 유별나게 바라보는’ 자신 그리고 사회의 암묵적인 시선 때문에,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은’ 내면의 두려움과 공포를 겪게 되고, 이러한 불안을 피하다 보니 병원에 가는 시기가 더더욱 늦어지게 될 수 있으리라 보인다.

한 주를 지내면서 여러분이 경험한 감정들에 한 번 주목해 보면 좋겠다. 혹시 다가올 일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긴장을 느끼지는 않았을지, 그리고 지난 일을 떠올리며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불쾌하거나 실망스러운 마음을 느끼지는 않았었는가.

 

그러나 인간의 정서를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처럼, 필자는 이런 감정들 중에 나쁜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즉,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 싫어도, 감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며 생존을 더 적응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사실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스트레스 자체를 현실적으로 완전하게 없애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불안감이나 초조감 등 마음의 알람(alarm)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에 부적합한 개체가 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나빠’라며, 스스로가 느끼는 우울감이나 불안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정하며 없애버리려고 할 경우, 또 외부의 도움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면 통증(pain)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개인의 고통(suffering)을 가속화시키는 순환고리에 빠지게 될 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면담을 맡은 주치의가 지영에게 ‘이곳까지 스스로 와 준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다.’ 라고 했던 말이 매우 공감되었다. 병원에 처음 오는 경험 자체가 낯설고, 치료를 받기 전 두렵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 즉 저항(resistance)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정신분석학자인 Nancy McWilliams는 '만일 인간이 새로운 영향에 대해서 내부적인 저항을 느끼지 못한다면 세뇌와 선동적 행위와 같은 활동에 매우 쉽게 넘어갈 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즉 새로운 경험에 쉽게 변화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인 저항 역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기능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항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기 마음을 자세히 보고, 조금 더 나은 방향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내어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면 이미 그 자체가 ‘이상하지 않다’는 증거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발걸음을 향한다면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이 경험하는 고통 뿐만 아니라, ‘가능성’ 역시 말미에 발견하고,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회복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용기를 냄으로서 정신과의 문턱이 조금 더 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캡처55.PNG

글 : 정나래 (용인병원 임상심리과장/임상심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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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석만(2013), 이상심리학 제 2판을 인용

2) Hayes, Strosahl & Wilson(1999).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의 제 1장을 인용

3) Beck(2005), Reflections on my public dialog with the Dalai Lama 에서 인용

4) APA(2013), 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Fifth Edition (DSM-5)에서 인용

5) Greenberg, Paivio (1997), Working with emotions in psychotherapy(이흥표 역)에서 인용

6) Nancy McWilliams(2004), Psychoanalytic Psychotherapy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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