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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dmin
  • Jul 19, 2018
  • 2675

* 본 포스팅은 용인정신병원 WHO협력센터 '동료지원가 양성과정' 수련생의 수기입니다.

 

 

올해로 정신장애인 당사자로서 23년 차가 되는 해입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삶에는 많은 희로애락이 공존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삶을 사랑합니다.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그래서 누구보다 빛나고 소중한 시간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마음 따뜻한 당사자 동료들, 가족처럼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준 정신보건 종사자 선생님들까지.. 이런 소중한 사람들이 제게는 정말 큰 선물입니다. 항상 믿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가지게 해줍니다.

 

저에게 정신질환이 찾아온 건,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다는 여고 시절이었습니다.

 

입학 후 공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늘 공부뿐이었습니다. 항상 잠이 부족한 상태였지만 학교와 학원을 병행하며 쉴 새 없이 공부했고, 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제 험담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스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저를 알고 있고 해치려는 것 같았으며, 항상 건너는 건널목의 초록 신호등은 하느님이 저를 죽이라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밥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었고, 잠을 자려고 누우면 벽에서 어떤 사람이 방망이를 들고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너무 무서웠습니다.

 

며칠간 잠을 이루지도, 먹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않은 채 멍하게 있는 제 모습에 부모님은 고1 겨울방학 무렵 정신과 병동으로의 입원을 결정하셨습니다. 3개월간의 입원치료 후 어느 정도 증상이 호전되어 퇴원하기는 했지만, 학교에 바로 복학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 1년 휴학을 하고 용인정신병원 낮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낮병원에서 많은 치료 프로그램들에 참여하게 되었고, 저는 점점 예전의 웃음과 쾌활한 모습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시기 제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당사자 동료들과 종사자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저는 덕분에 낮병원 졸업 후 치료 프로그램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이후 학교도 다시 복학하여 꽤 높은 성적을 성취하며 지내다가 재발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병이 장기간의 꾸준한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치료를 받고 졸업한 후에는 작은 건축사무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섬세함을 요구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퇴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안 형편을 생각하면 힘들더라도 견디고 일을 해야 했다는 생각과, 저를 아껴주셨던 선생님들이 실망하지는 않을지 하는 두려움에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러한 시간이 지속되면서 저는 재발했습니다.

환청과 망상들이 제 삶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어두운 시간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절망의 늪에 빠져 투신했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병원으로 이송되는 그 순간에도 몸의 통증보다는 진심을 다해주었던 선생님들이 실망하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에 제 마음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난 뒤 저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건 주치의 선생님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었습니다. 그때 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고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저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은 실망감이 아니라 다친 모습에 아파하고 살아있음에 안도하는 부모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그 순간 다짐했습니다. 다시 일어나 걸어가자고..

 

저는 정신장애인은 의지가 약해 쉽게 포기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장장 5년을 다시 일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습니다. 이는 제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저는 장기간 직장생활을 유지했고 회복 강의도 다니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의 은인을 만나 제 인생의 3막이 열렸습니다.
저는 용인정신병원의 낮병원인 '해뜰날센터'에서 주 1회 진행되는 회복연구회 프로그램에 전문 자원봉사자로서 센터장님과 함께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회복연구회'는 회복을 테마로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증상관리에 대한 토크콘서트를 하거나, 수기를 직접 써 봄으로써 회복에 대한 열망을 다지기도 하고, 가족 수기도 공유하면서 가족의 입장이 되어보는 역지사지의 시간이나 간담회를 가지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회복의 주체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당사자임을 재확인하고, 그들이 회복 과정에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여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내면서 '동료지원가'로 일할 기회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동료지원가는 당사자를 대할 때 환자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친구로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낮병원을 처음 이용하는 신입회원의 적응을 돕거나 입원회원과 취업회원을 격려하고, 각종 프로그램 진행과 회복 강의 등의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런 열정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올해로 동료지원가 3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더욱이 올해는 동료지원가로서의 역량 강화와 성장을 위하여 용인정신병원WHO협력센터의 '동료지원가 양성과정' 수련생이 되어 열심히 배우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정신질환은 제게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을 선물하였습니다. 저는 따뜻한 동료지원가가 되고 싶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앞장서서 깨고 싶습니다. 그렇게 제 목표를 위하여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고자 합니다.
저부터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돕고, 삶을 열심히 즐기다 보면 정신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도 점점 낮아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정신장애라는 이유만으로 민간보험 가입에 재한을 당하는 등의 여러 사회적 불평등과 처우도 해소하기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정신장애인도 사회의 일원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편견으로 인하여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직업재활은 그 어느 약 보다 효과가 뛰어나다고 할 정도로 정신장애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치료적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정신장애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정신장애인에게 기회를 마련해 주시기를 이 수기를 빌어 정책기관에도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신장애인 당사자분들에게 드리는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보석 중에 최고라고 일컫는 보석, 다이아몬드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처와 상흔이 제일 많이 있다고 합니다. 우린 분명 빛나는 다이아몬드이기에 상처가, 그리고 상흔이 많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분들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http://naver.me/5YJUlQC7

 

 

출처 : 용인정신병원 공식 네이버포스트 https://post.naver.com/yongin_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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